바윗덩이에 짓눌리는 느낌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인생에 돌도 안 된 손녀가 떡하니 들어앉았다.
며칠만 맡아 달라던 약속은 물거품 같아,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내가 이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아빠 없이 아들 키우느라 진땀을 뺐는데, 이젠 부모도 없는 손주를 키우게 생겼다.
그래도 다행인 건 내 아이처럼 보채지 않고, 틀니로 씹던 밥도 잘 받아먹으며, 내 시간에 자고 깨는 알람 같은 존재다. 방긋방긋 잘도 웃고 웬만큼 기저귀가 흥건해도 보채지 않는다. 어쩌면 어두운 내 귀가 아기의 울음에 반응하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등이 굽은 건 가벼운 우리 손녀에게 편한 잠자리를 주라고 그런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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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 꽉 막히고 열이 펄펄 올라 병원에 데려갔더니 요즘 유행하는 감기라며 약을 지어준다. 약병도 어찌 이리 작고 귀여운지. 간호사는 손녀가 또래보다 마르고 작단다. 싫다고 까무러치는 아기에게 억지로 약을 먹이고, 손등에 묻은 약 한 방울 핥으니, 약이 달다.
이 단 걸 싫어할 리 없는데.
울다 지쳐 축 늘어진 아기를 업고 나오니 어느새 새근새근 잠이 든다.
달님, 아픔은 저에게 주시고 이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게 해 주세요.
눈물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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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원 갈 때가 되었다는 집주인 말에 동네 어린이집이란 곳을 찾아갔다. 빌라 1층, 방 3칸짜리 어린이집엔 애들이 바글바글, 동화책도 가득, 장남감도 잔뜩이다. 할머니 혼자 키우는 아이라 하니 돈 한 푼 낼 필요도 없단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에 올걸. 그림책 한 권 없는 지하 단칸방에서 그동안 얼마나 갑갑했니, 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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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육비인가 뭔가가 끊겼단다. 건강보험 어쩌고, 가족관계 어쩌고 서류가 잔뜩 필요하다는데, 어찌해야 할까, 도통 모를 말들뿐이다. 딸뻘 되는 선생님에게 그저 미안하다고 수고스럽겠지만 좀 도와달라고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매달리며 부탁했다. 선생님과 동사무소랑 구청, 난생처음 세무서를 오가며 이것저것 서류를 끊었더니 이젠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신다. 고생 많았다며 밥 한 끼라도 대접하겠다고 들어간 식당에서, 되레 저녁을 얻어먹었다. 완전히 까발려진 가난에 쥐구멍이라도 숨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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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도 잘 쓰고 그림도 잘 그리고, 집에서 할 수 없는 걸 어린이집에서 죄다 하고 저녁에 잔뜩 짊어지고 돌아오면, 나는 또 이런 걸 가져왔냐며 고이 접어 버리기 바쁘다. 언제는 아이 돌아올 시간에 어린이집 앞에 갔더니 선생님이랑 단둘이 있기에, 그 많던 아이들 다 어디 갔냐 했더니, 다른 애들은 점심 먹고 나면 하나둘씩 엄마들이 와서 데려간단다. 저녁 먹을 땐 혼자란다. 그래도 저녁까지 먹고 오라고 했더니, 아이도 그게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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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비가 오니 몸이 무겁고 쑤시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점심에 드러누웠다가 눈을 뜨니 한밤중인데, 내 옆에서 새우처럼 웅크려 자는 손주를 보니 코끝이 매워졌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오로지 할미에게만 의지하고 있는 작고 귀한 내 손주.
이제 알 건 다 알아 가는데, 얼마나 서럽고 막막하고 아픈 일이 많을까.
내일이면 훌훌 털고 일어나 할머니 이제 다 나았다고, 우리 아가 행복이 옮아서 금방 나았다고 얘기해야겠다. 한숨과 눈물을 쏟고 나니 정말 몸살이 금방 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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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이 쪼그라들고 뼈마디가 따로 노는, 마른 겨울 같은 나에게 너는 봄이다.
봄이 오니 꽃이 피어나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었다. 어린이집에서 졸업선물로 받은 책가방에는 필통이며 공책까지, 그렇게 많이 받은 건 우리 애뿐이란 걸 안 건 한참 나중 일이었다. 원장선생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워 계속 울었다. 졸업식에서 우는 건 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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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에 들어가니 아이가 더 빨리 집에 온다. 학교 도서관에서 책 읽다 온다지만 저녁까지 해결되진 않는다. 그래도 라면 끓이고 밥도 차려 먹을 줄 아니 걱정은 덜었다. 다만 할미 올 때까지 혼자 어두운 방 안에 있는 게 안쓰러울 뿐이다.
학교 선생님이 상담받으러 오라기에 가서 사정을 얘기했더니, 걱정 마시라고 성격도 차분하고 친구들과도 너무 잘 어울린다신다.
부모 없이 자라 부족함이 많아 친구도 못 사귀고 따돌림 당하진 않을까 걱정했는데, 선생님의 말씀에 마음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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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지 줍다 늦어져서 오밤중에 들어갔는데, 아이가 추운데 골방에서 웅크려 자고 있다. 평소엔 방도 잘 치우고 이불도 펴고 자는 아이가 저녁도 안 먹고 울다 잠든 것처럼 눈이 퉁퉁 부어 있다. 자리 펴주려고 부산떨었더니 일어나 앉으며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는다.
동네 미용실 친구네 집에 자주 가는데, 그 집에 언니가 둘이나 있어 무섭다고 한다.
가기 싫지만 무서워서 안 갈 수 없고, 그 집에 따라가면 언니들이 시키는 대로 물 떠다 주고 청소하고 온갖 시달림을 당하고 온단다.
네 뒤에는 할미가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까 다시는 그 집에 가지 말라고,
그것들 말 다 무시하라고, 할머니 화나면 엄청 무섭다고, 내일 가서 혼쭐을 내주겠다 했더니 나더러 참으란다.
다음날 토요일이라 오전부터 미용실엔 손님이 많다. 당신 애들이 내 손녀딸 괴롭힌다고 큰소리로 따졌더니, 미용사가 가게 밖에서 놀고 있던 애들을 끌고 들어온다. 왜 그랬냐 다그치니, ‘어때 엄마 아빠도 없는데’란다.
갑자기 속이 울렁거리며 어지러워 주저앉았다. 아이의 설움이 내 심장에 못 박힌다.
눈물 콧물 범벅이 되어 한 번만 더 내 손녀 건드리면 니들 손모가지 다리 몽둥이를 다 부러뜨리겠다고, 미용실에 불이라도 놓을 거라,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미용사는 미안하다며 애들을 혼내는 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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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통에 쌀이 안 줄어 매일 저녁을 어디서 먹고 들어오냐 물으니, 친구 집에서 먹고 온단다. 미용실 일도 있고 해서 어디 사는 누구냐 꼬치꼬치 물으니, 도서관에서 만난 친군데 학교는 다르지만 집이 근처란다. 학교 끝나면 시립도서관에서 친구를 만나 책 읽고 놀다가 그 애 집에서 저녁 먹고 오는데, 중학생 오빠가 김치볶음밥이며 떡볶이 등을 차려줘서 다 같이 맛있게 먹고 온단다. 그 집 엄마는 아파서 계속 누워있다기에, 친한 친구지만 엄마가 많이 아프니까 그 집에 가지 말라고 했다.
며칠 뒤 병색이 짙은 그 애 엄마가 잔뜩 화가 나서 찾아와 ‘왜 같이 못 놀게 하느냐’ 따져 묻는다. 엄마가 아픈데, 폐 끼칠까 봐 그랬다고, 오해마시라 했다.
아이 엄마는 ‘우리 애들은 친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꽃집을 하기에 한 번씩 화분이며 난 같은 걸 보내오는데, 받기는 부담스럽고 안 받기도 뭐해서 난은 집주인에게 선물했다. 언젠가부터는 각종 모종과 블루베리 같은 나무를 가져오는데, 안 그래도 좁은 집이 더 좁아졌다.
초등학교가 달라도 그 아이만은 친하게 지냈는데, 중학교 갈 때가 되었을 때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얼마 뒤 아빠는 꽃집을 친척네 근처로 옮겨야 해서 먼 곳으로 이사 간다고 했다. 눈물짓는 손녀만큼이나 나도 서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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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올라간 후로는 귀가 시간이 너무 늦어져서 어디서 뭘 하다 오냐니까 공부도 하고 돈도 벌고 온다면서 큰돈을 아무렇지도 않게 턱 내민다. 어디서 난 거냐 물어도 대답하지 않는다. 아무리 혼을 내고 다그쳐도 대답 않기에 절대로 그런 돈 버는 일 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손녀도 울고 나도 울었다.
핸드폰이 생겼다며 좋아하던 손녀는 밀린 숙제처럼 쌓인 어려운 일을 척척 해낸다. 동회에서 어려운 가정 도와주는 것도 다 해결하고 의료보험이니 하는 것도 죄다 정리했단다. 통장도 만들어서 은행도 드나들게 생겼다.
한번은 허리가 아파서 끙끙 앓고 있으니 응급차 부르고 병원 가서 여러 치료도 받았는데, 병원비가 무서워서 어찌할 줄 모르고 있으니, 그게 다 무료란다. 어떻게 무료일 수 있냐니 차상위 계층이니 뭐니로 혜택을 받을 수 있는데, 그동안 못 받던 걸 받을 수 있도록 했단다.
자랄수록 내 말은 잘 안 듣지만 야무지고 똑똑하게 크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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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다 다니는 학원 한 번 다닌 적 없는데도 공부를 곧잘 했다. 초등학교 때는 담임선생님과 상담하러 몇 번인가 불려가기도 했는데, 중학교에 들어간 후로는 그런 얘기 한 번이 없다. 어디서 뭘 하다 오는지 물어도 공부하고 알바하다 왔다며 빙긋이 웃기만 할 뿐이고, 힘든 내색 어려운 기색이 없어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한번은 하교하는 길에 딱 마주쳤는데, 우르르 쏟아지는 아이들 중에 친구도 없이 혼자 걷기에 동행하고 싶었지만, 손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골목 안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따라가기엔 내가 끄는 수레가 너무 버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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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 받았다며 필요한 물건들을 사다 나르기도 하고, 편의점에서 버린다며 곧잘 가져오는 김밥 따위로 저녁 식탁이 풍성해지기도 했다. 프라이팬에 삼각김밥을 볶아먹으면 맛있다며 내미는데, 나는 그저 누룽지가 젤로 좋다.
한동안은 학교에도 잘 안 가는 것 같았지만, 물으면 그저 씁쓸한 표정으로 웃을 뿐이고 선생님이나 누가 찾아오는 일도 없으니 그냥 믿고 내 할 일만 했다.
열 네 살이면 한참 말썽도 부리고 사고도 칠 나이라는데, 너무 어른스러운 손녀는 세상의 무게를 혼자 떠안고 사는 것 같다.
하루는 집주인이 손녀가 예고에 진학하려다가 불합격 통지를 받은 것 같다며 우편물을 내밀었다. 통지서에 적힌 사유에는 출석 일수 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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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 가고 싶지 않다고 하더니, 어느 날은 멀리 있는 상고에서 합격통지서를 받았다며 기숙사에 살면서 일도 배우고 2학년 되면 돈도 번다고 한다. 할미 모르게 예술고등학교에 가려고 했는데, 한 번의 실패에 현실을 깨닫고 상고로 진로를 정했구나.
정작 나는 네가 무얼 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너무 어른스럽게 커버려 이제는 나를 돌보는 귀한 손주가 이제 내 곁을 떠날 때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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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이다.
오늘이 지나면 귀한 내 손주는 나를 떠나 더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낳자마자 죽어서 딸이 없던 내게 딸 같은 손녀였다.
해준 게 없어 늘 미안했는데, 졸업식이 쓸쓸하지 않게 꽃이라도 사가야지.
귀여운 아가야 기쁜 날도 많겠지만, 힘든 시간도 못지않을 게다. 맵고 짜고 떫고 시고, 사람 때문에 아파도 보고 지혜가 없어 실패도 하고, 힘든 시련을 겪으며 살다 보면 세월이 화살처럼 지나 할미처럼 세상 졸업할 때가 오는 거란다.
말년에 너를 만나 참으로 좋았다. 너로 인해 무겁고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이 컸지만, 네가 준 기쁨과 웃음, 행복이 훨씬 더 크단다. 이제 늙고 병든 나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서 밝은 기운으로 살아갈 너를 생각하니 마음이 홀가분해지는 것도 같구나.
다시는 오지 않을 행복이여, 나를 잊고 날아올라라.
오늘이 지나면 할미도 너를 따라 졸업하고 싶다.
10여 년 전, 어느 쌀쌀한 아침.
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우며 무료함을 달래던 나는 허리가 다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걸 보고 있었다.
우연히 바라본 할머니의 힘든 걸음을 눈으로 좇으며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고 계신가?’ 무심코 생각했다.
느린 걸음으로 한참 만에 다가온 할머니의 뒷모습이 드러났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감춰졌던 할머니의 등 뒤에는 깡마른 손으로 움켜쥔 꽃다발이 있었다.
그제야 바라본 학교 앞 현수막.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 날은 여고 졸업식이었다.
할머니가 학교 안으로 느릿느릿 사라지는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감동적인 작품으로 느껴졌고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의외의 모습에 놀란 나는,
할머니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