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 One Day
날이 밝았다.
구수한 냄새에 잠을 깨야 하건만, 살랑대는 바람이 드나드는 틈에 오른쪽 뒷다리가 간지러워 엉겁결에 눈이 떠졌다.
몸을 뒤틀어 밖을 내다보니 ’아뿔싸‘ 햇볕에 뜨거워진 내 소중한 작품이 말라가고 있었다. 서둘러야 한다. 그나마 내가 있어 축축했던 빈자리에 재빨리 진흙을 담아 넣고 길을 떠나야 한다. 조금이라도 늦장부리면 다시 굴릴 수 없을 만큼 부서져 버린다. 아니면 또 어떤 놈이 채갈지도 모를 일이다. 일단 저기 애기똥풀 옆의 흙을 파봐야겠다.
잡초 무성한 곳에 자리 잡을까 싶다가도 오만 놈들이 집적거릴 것을 생각하여 성근 그늘에 자리를 폈더니 이것도 낭패다. 그늘에 자리 잡은 녀석들은 아직도 느긋하게 자고 있는지 인기척이 없다.
애기똥풀은 민들레처럼 억척스럽지 않아 젖은 흙을 쉽게 퍼 올릴 수 있다. 진흙을 짊어지고 작품의 구멍 메우기를 세 번. 수고스럽지만 이제 옮겨도 될 만큼 충분한 수분을 머금게 되었다.
작품에 올라 어디 부서진 곳은 없는지 이곳저곳을 살피며 허물어질만한 부분들을 다지고 출발 준비를 마친다. 그리고 온 몸에 힘을 주어 작품을 옮기기 시작 한다.
다시 어제와 같이 고된 하루가 시작되는구나.
마른 바람이 부는 게 오늘은 어제처럼 질척이진 않겠다.
먼저 자세를 잘 잡아야 한다. 단순히 동그랗게 만든 작품이 아니기 때문에 남들처럼 그냥 굴리다가는 방향이 영 틀어지고 만다. 지난번 작품보다 크기도 클뿐더러 모양도 복잡해져서 뒷다리에 짚을 포인트들을 모두 표시해 두었다. 그리고 손에 실리는 무게도 예전의 두 배는 족히 되지 싶다. 그것을 소화할 만큼 나는 강해져 있다. 처음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약간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이내 출발이다. 열 걸음을 뗄 때마다 태양과 바람을 느끼며 방향을 가다듬어야 한다. 만약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백 걸음쯤 뒤에는 스무 걸음의 수고를 더 할 수 있다. 방향이 어긋나면 초반에 바로잡아야 나중에 고생을 하지 않는다.
내가 향하는 곳에서 갈색 전사무리들이 기웃거리며 다가온다. 그들은 작지만 냉혈한 사냥꾼들이며 나와 같이 묵묵한 청소부다. 고귀한 죽음을 무덤덤한 시간 속으로 끌어 내리는 능력을 갖고 있다. 떼로 덤비면 당할 재간이 없다. 나는 건재를 과시하듯 커다란 작품을 살짝 들어 올리는 방어 전략을 구사한다. 다행히 녀석들은 나보다 연약한 이들을 찾고 있는지, 지난번처럼 집적거리지 않고 눈빛만 교환하며 지나쳐간다. 눈빛을 거두고 작품을 다시 굴리는 조금은 멋쩍지만 다행스런 순간이다.
나의 작품은 삶의 목적이자 원동력이며 내가 존재하게 된 유일한 것이다. 나는 이곳에서 태어나 이것을 먹으며 자랐으며, 옷을 세 번 갈아입고 껍질을 부수고 나오기까지 이곳은 나의 세계이자 모든 것이었다. 빛을 처음 본 그 날. 무언가에 홀린 듯이 주린 배를 부여잡고 희미한 냄새를 쫓아가던 외로운 비행은 얼마나 두려웠던가. 비행하는 내내 날개달린 포식자들은 횡재한 듯 덤벼들어 동료들을 먹어치웠다. 공포는 밀물처럼 찾아들고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어린 시절 만끽했던 풍요를 떠올리게 한 재료무더기를 발견하고 느낀 환희와 그 위에서 누리는 식사는 얼마나 황홀했던가. 누구보다 멋진 작품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두 번이나 강탈당한 상실감은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지난번의 실수를 다시는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나는 재료무더기에서 수많은 싸움을 치루며 경쟁자를 제압할 방법을 고루 터득했다. 고갈되어가는 재료는 곧 극심한 경쟁구도를 자아내었고, 더 이상 이곳에서 머무를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짊어 질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재료를 챙겨 무더기를 떠나왔다.
나는 그저 평화롭게 목적지로 향하고 싶을 뿐인데, 두 차례의 상실은 나를 악바리로 만들어 버렸다. 치열한 전장 속에서 누구보다 큰 덩어리를 갖고 길을 떠난 것에 대해 나는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덩어리가 작품이 되기까지 지난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초를 겪었던가.
이런 저런 상념과 더불어 몸을 움직이던 찰라 커다란 그림자가 나를 덮쳤다. 순식간에 날아든 새의 습격에 혼비백산 달아났다. 땅을 향해 꽂히는 부리를 피해 달음질한 나는 낭떠러지 아래로 굴러 떨어지다시피 내려왔다. 죽은 채 하며 갈색 자갈에 몸을 숨긴 채 빼꼼히 살펴보니 새는 나의 작품과 더불어 오간데 없이 사라졌다.
작품을 놓쳐버린 자리로 황급히 돌아와 보니 ’없다‘. 없어졌다. 나의 모든 노력과 세상을 훔쳐가는 파렴치한 녀석들. 다행히 놈도 급하게 움직이느라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며 움직였다. 오십 보쯤 쫓은 둔덕 위에서 바라보니 저 멀리 내 작품이 뒤뚱거리며 멀어져 가고 있다. 나는 나의 독특한 작품을 아주 먼 곳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구르듯 빠르게 내려와 뒤를 쫓았다. 나만큼 덩치 큰 녀석이 천연덕스레 내 작품을 굴리고 있다. 녀석은 두발이 묶여있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재빨리 놈의 등위에 올라타서 껍질 사이에 발을 우겨넣었더니 녀석이 꼼짝을 못한다. 맘만 먹으면 날개를 꺾어 다시는 날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놈은 내가 새에게 잡아먹힌 줄 알았다며 순순히 작품에서 손을 내려놓았다.
그가 떠나고 작품을 둘러보던 나는 움푹 패인 곳을 발견했다. 어느 돌 뿌리나 나뭇가지라도 걸려 떨어져 나간 모양이다. 그런데 이건 내가 생각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이다. 나는 그저 덧붙임을 통해 작품을 구현해 왔을 뿐, 덜어냄을 통한 형태의 변형은 새로운 시각을 넓혀준다. 게다가 작은 여백은 이동에 큰 불편도 없다. 우연한 계기로 인해 나는 내 작품을 더욱 풍성하게 해줄 요소를 찾았다.
내가 이렇게 형상에 집착하게 된 것은 첫 번째 경단을 굴리다가 발견한 거미의 작품 때문이다. 그는 효율을 따지지 않는 작품을 만들었다. 먹이 잡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조금은 느슨하게, 듬성듬성 지은 거미줄에 새벽이슬이 맺혀 아름답게 빛나는 광경은 거대 종족들이 만든 그 어느 상아탑보다 아름답고 찬란했으며 물과 바람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러나 거미는 살생의 도구로 자기 능력을 사용하길 거부했기 때문인지, 작품에는 걸려든 먹이도 지은이도 없었다. 그는 작품을 중요시 한 나머지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해 사라져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보통의 다른 녀석들은 머리를 처박고 길을 가느라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길을 가는 내내 위를 바라보기위해 애쓴다. 그래서 목뒤에 붙은 등껍질이 다 닳아 없어졌고, 속살이 쓸려 통증을 느낀다. 어째서 그러기 시작했는지는 나도 알 수 없지만, 그럴 때에 종종 재미있는 광경들을 목격하곤 한다.
두 번째 경단을 굴리다가 발견한 제비둥지는 굉장히 독특한 것이었다. 제비는 알을 낳기 전 비바람이 들치지 않는 높은 위치에 진흙과 짚으로 아담하고 안전한 둥지를 짓는다. 그런데 그날 나는 길게 늘어진 제비의 작품을 보았다. 그 곳에서 알을 까고 나온 제비새끼는 한 마리 뿐 이었다. 단 한 마리뿐일지라도 제비새끼는 길쭉한 둥지를 활발히 오르내리며 땅의 모습을 관찰하고 있었다. 아직 솜털도 벗지 못한 새끼 제비의 오르내림은 마치 아름다운 춤과 같았고, 나는 그 모습을 한참동안 넋 놓고 바라보다가 두 번째 경단을 도둑맞았다.
두 차례의 실패와 매 순간의 삶을 계기로 깨달은 바는 나의 앞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바로 한걸음 앞에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모르고 예견치 못한 고통과 상실을 경험할지 모른다. 벌써 오늘 오전동안 한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겼고 내 모든 것을 잃을 뻔 했다. 늘 우리는 고통과 죽음의 경계 속에서 똥을 굴리고 있다. 이런 극한의 상황이라면 조금 더 고되더라도 내가 좋아하는 일, 멋지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게 좋지 않을까? 등껍질이 부서져도, 속살이 파여 쓰라려도 위를 주시하며 이동하는 일은 나를 다른 세계로 안내한다. 그냥 지나가면 볼 수 없는 세상. 머리를 처박고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다. 나는 그 세계에 열려있기 위해 노력했고, 그것을 표출하기 위해 나의 모든 것을 걸고 걸어왔다. 그것이 이번 세 번째 작품이다.
모두들 효율적으로 굴리기 위해 똥을 둥글게 만든다. 그러나 나는 보았다. 효율을 따지지 않은 거미의 작품과 제비의 가능성을. 그들도 나처럼 조금 다른 생각을 갖고 세상에 접근했을 게다.
어제는 두 해 살이도 넘긴 것처럼 보이는 아주 큰 쇠똥구리를 만났다. 나보다 더 검붉은 껍질을 반짝이며 내가 이제껏 본 것 중에 가장 큰 경단을 굴리고 있었다. 그는 내 작품을 바라보며 그렇게 만들면 굴리기에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느냐고 했다. 나는 제비와 거미집 얘기를 두서없이 쏟아 냈다. 그는 알아들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끌끌 차며 유유히 그 자리를 벗어나는가 싶더니 나와의 거리가 조금 더 멀어지자 방향을 틀어 빠르게 똥을 굴리며 떠나갔다. 나는 작아지는 큰 경단을 바라보며 부러움과 더불어 초라함을 느꼈다. 순간 그를 쫓아서 어찌 그리 큰 경단을 굴리는지 방법을 배우고 싶은 마음도 꿈틀거렸지만 이내 꾸욱 참았다. 그러기엔 내 자존심이 허락지 않았다. 나도 무더기를 벗어날 때엔 가장 큰 똥 덩어리를 챙겨 나왔었으니까. 지금 이렇게 특이한 모양인 것은 내가 먹어서가 아니라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니까.
요즘 같이 뜨거운 여름날 오후가 되면 다들 잠시 쉬어간다. 그러나 나는 쉴 수가 없다. 이 시간은 포식자들도 쉬는 시간이니 조금이라도 안전하게 거리를 좁히려면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내 고향은 아직도 한참을 더 움직여야 다다를 수 있는 곳에 있고, 도착할 때에는 작품이 절반으로 줄어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나는 그곳에 다다르면 새끼에게 충분한 양의 작품을 놓아줄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어린 녀석은 이게 똥인지 작품인지 구분할 수 없을 테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지금 내가 작품을 이렇게 어렵게 만들고 힘든 방식으로 이동하는 것은 나를 위함이기 때문이다. 어째서 내가 그 먼 곳에서 날개 짓을 시작했는지는 모른다. 그저 주어진 운명이고 나는 다시 그곳을 향해 갈 뿐이다. 바뀔 수 없는 현실과 바꿀 수 있는 과정에서 내가 만족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한 것 뿐이다.
다행히 풀이 우거진 곳에 다다랐다. 이제 이 짧은 숲을 지나고 다시 벌판의 언덕을 건너고 나면 내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다. 햇빛도 피해 갈 겸 그늘 속으로 진입한다. 숲 속에는 흥미로운 볼거리가 다양하지만 위험요소도 훨씬 더 많아진다. 좋아하진 않지만 언제까지나 피해갈 순 없다.
작품을 덜어내는 방식은 여러모로 유용하다. 조금 떼어 먹음으로 독특함을 더할 수 있고, 무엇보다 자식에게 느낄 죄의식을 덜어준다. 어쩌면 녀석도 미로 같은 작품을 헤매며 재미를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주린 배를 달래며 이동하는데, 어느새 작은 애벌레 한마리가 옆에서 함께 걷고 있다. 헌데 이 녀석은 나뭇가지에 매달리지도 않았는데 제 몸에 고치를 짓고 있다. 그것도 마치 벌집 모양을 연상시키는 육각 면들을 등위에 얹고 움직이고 있다.
이렇게 특이한 경단은 처음보네.
나도 이렇게 독특한 고치는 처음 봐. 게다가 너는 가지에 오를 만큼 충분히 성장한 것도 아니잖아.
응, 곧 나무에 오를 건데 오르기 전에 실험을 할 게 있어.
어떤 실험?
둥글게 감싸는 것 보다 견고하고 아름다운 것.
거미는 없었고 제비는 무서웠지만 작은 애벌레와 각자의 작품에 대하여 논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비록 방식과 재료, 형태와 크기, 색깔과 용도가 전혀 다른 것들이지만 그와 내가 생각하는 공통된 지점을 느낄 수 있다. 그는 이 숲에서 태어나 그 끝이 어디인지 모르지만 끝에 이를 때 까지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나뭇가지를 찾을 거라고 말했다. 나는 이 숲의 끝을 보았으니 나와 함께 동행 하면서 서로의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자고 했다. 그는 여백에 대한 이해가 높았다. 내 작품의 여백이 조금 헐거우니 육각으로 파보면 어떻겠냐고 조언했다. 나는 작품을 수정하면서 힘이 솟았다. 나는 그의 작품이 크기에 비해 가벼워서 무척 놀랐다. 게다가 그는 자기 몸에서 재료들을 쏟아내고 있어서 많이 부러웠다. 그의 작품은 견고하고 단단하게 보였지만 실제로 만져보면 부드럽고 푸근했으며, 손이 닿기를 기다린 것처럼 유연하게 손을 감싸 안았다. 어떻게 이런 재료로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마냥 신기하고 놀라웠다. 그는 나의 작품이 유기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구조적으로 단단하고 밀도가 높다며 감탄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고 만지며 궁금한 부분을 묻고 얘기 나누면서 한동안 숲길을 거닐었다.
그때 검붉은 전사 무리들이 나타났다. 나는 재빨리 작품에 구멍을 내고 애벌레를 그 속으로 밀어 넣었다. 들키지 않으려고 구멍을 급히 메꾸고 작품을 굴리기 시작하는데, 나타난 무리들이 애벌레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나뭇잎이 많은 쪽으로 지나갔다고 둘러댔다. 다행히 내 작품에서 풍기는 냄새에 애벌레의 자취는 감춰진 듯 했다. 무리들이 떠나고 한참동안 그곳을 벗어나는 데에 집중했다. 아마도 애벌레는 괴로웠을 수도,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 즐거웠을지도 모른다. 잠시 후 애벌레가 큰 소리를 질러서 급히 멈추었다. 작품 밖으로 나온 애벌레는 아쉽지만 여기에서 헤어져야겠다고 말했다. 그는 구르는 작품 속에서 마음에 드는 나뭇가지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과연 내가 보기에도 아래로 뻗은 모양이 범상치 않았고, 주변 나뭇잎에 둘러싸인 게 안전하게 보였다.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마도 내가 날게 되면.
짧은 인사를 마치고 우린 각자의 길을 향해 멀어졌다.
이젠 해가 많이 넘어가 있었고, 숲의 끝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제부터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다. 더 이상 나의 작품에 대하여 논해줄 이도 없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인다며 떼어먹다간 나른함을 이기지 못해 그만 드러누울지 모른다. 다행히 그늘에서 오래 움직이며 작품이 충분히 다져진 탓에 벌판으로 나간다 해도 쉽게 부서지진 않을 것이고 아까와는 다르게 달궈진 벌판은 식어가고 있다.
그래도 더디고 힘든 걸음의 연속이다.
이젠 하늘을 바라보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빛이다. 아니 하늘색 이라고 해야 할까? 하늘색은 참 바보 같은 말이다. 하늘은 푸르기도 하고 회색빛이기도 하며 매일 저녁 붉게 물들기도 하는데, 그 총 천연색 중에서 도대체 하늘색이란 무엇이란 말인가.
벌판은 이렇게 나를 상념에 젖게 만드는 힘이 있다.
태양이 조금씩 시들어가던 그때, 몹시 지쳐 보이는 쇠똥구리가 내 앞에 툭 떨어졌다. 그는 여린 껍질로 무장하고 여기저기 빠르게 기웃거리는 몰골로 보아 자기 세계를 갓 허물고 나온 신참같이 보였다. 그리고 날지도 못할 만큼 몹시 허기져 있었다. 딱 보기에도 작고 초라해 보이는 녀석은 감히 내게 먹을 똥을 달라는 요구조차 하지 못하고 쭈뼛거리며 내가 지나는 모습을 주시하며 떨어진 조각이 없는지 살피고 있었다. 나는 내 작품을 조금 떼어 주었다. 그는 붉게 상기된 얼굴로 똥을 받아들고 황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그는 나와의 짧은 만남에서 작품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아마도 그는 똥덩이를 발견한 뒤로 다시는 하늘을 보지 못 할 것 만 같다.
머리를 처박고 땅만 훑으며 사는 인생이 그려진다.
땅을 딛고 하늘을 바라며 살아야지.
허나 어두워진 하늘 바라보기를 잊고 기어가는 내 꼴이 이제 그만 걸음을 멈출 때가 되었나보다. 태양의 기세는 완전히 사라지고 반만 남은 달님이 어느새 자리 잡았다. 곧 수많은 별들이 하늘을 뒤덮겠지.
오늘의 여정은 여기까지다. 애벌레가 구르던 자리에 몸을 누이며 생각한다.
오늘 하루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즐거운 일을 하며 보냈는가?
나는 계속 이렇게 굴러가도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