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는 무의식적 인격의 한 측면이다.
표출되지 않는 생각과 마음, 무의식과 같은 부분에 대하여 어떻게 표현 할 수 있을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나에게 그림자는 창조적 발산의 모티브가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아픈 과거를 억압하고, 인격의 열등한 부분들을 애써 피하고자 한다. 그래서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고 그 그림자를 떼어내려는 허망한 노력에 빠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허상의 세계에서 헤매는 인간의 애달픈 현실이기도 한데, 삶은 자신이 보고 싶지 않아도 비켜주지 않으며, 알고 싶지 않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또한 하나의 사건, 사실은 단일 관점으로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울 만큼의 잠재된 다면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현대의 수많은 매체들은 각기 자신들의 입장에서 정의와 불의, 시시비비를 논하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객관적 사실은 찾을 수 없다. 하나의 사실에 대한 다양한 관점과 각자의 해석이 때로는 편견이 되며, 심지어는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스스럼없는 왜곡도 감행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신자의 입장에서 어떤 사건과 사실을 바라보는 매체들의 다양한 입장을 소화하며 주관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사건과 사실에 대한 다의성뿐만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도 의식과 무의식과 같은 다의적 양상이 존재한다. 우리가 사고하고 판단하는 영역 안에 속한 것이 의식이라면, 그 이면에서 인식하지 못한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이 무의식의 힘이다. 다시 말해 의식적 계획과 노력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무의식의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것을 형상의 차원으로 환원하여 말하자면 하나의 형상이 주위 상황과의 상호작용에 의해 새로운 내러티브가 형성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기적 형태의 조각은 다양한 각도에서 관찰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림자는 하나의 실루엣만 재현한다. 이러한 원리를 이용하여 다양한 모습 속에 숨어있는 하나의 형태를 포착하여 그림자가 작품과 대치되는 이미지를 담아내었다. 조각과 그림자가 모순되지만 밀접하고 미묘한 관계를 갖는 모습으로 떠올라 의식의 포괄적 의미와 사건 이면의 다양한 관점, 혹은 삶의 본질을 성찰 할 수 있는 질문들을 던지고자 한다.
빛이 있는 곳에는 늘 그림자가 존재한다.
빛이 강할수록 그림자도 진해진다. 빛은 어둠이 있기에 진가를 드러내는 것이지,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고 빛이 없다면 어둠 역시 존재할 수 없다. 그 빛과 어둠 사이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을 알고 빛이 있어야 그림자가 생기듯, 대치되어 보이는 관계의 실상은 상생이다.
영원한 조연처럼 여겨졌던 그림자를 격상하여 당당한 주인공으로서 조각 작품과 대등한 관계를 펼치는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빛과 그림자, 여백과 음양, 시간과 공간에 대한 실험적인 조형어법과 더불어 전통 조각의 이면에 깊이를 더하는 계기를 만들 것이다.
2011년 첫 그림자 작업을 진행한 이래 아직 본인이 오르지 못한 산과 같이 느끼는 조명과 작품, 공간과의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것이 본 전시의 목표이다. 다양한 조명을 사용하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매끄럽게 재현하며, 전시의 인문학적 네러티브를 효율적으로 드러내는 매커니즘을 연구하기 위하여 조명 전문가의 조언과 도움이 절실해 지는 요즘이다.
조각만 혹은 그림자만 따로 떨어져있는 것이 아닌, 조각 작품의 의미와 더불어 분열된 자아처럼 떠오르는 그림자가 포괄적이고 상징적인 세계를 형성한다. 그러므로 입체 작품만큼 혹은 그보다 더 큰 그림자의 공간을 확보해야 하며 자연광을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는 넓은 전시공간을 필요로 한다. 전시공간에 시간성을 부여하여, 조각 작품을 드러내는 빛의 시간과 모든 조명이 꺼지고 그림자를 뚜렷이 하는 어둠의 시간, 그리고 그 둘을 모두 품은 상생의 시간을 설정한다. 조명이 켜지고 꺼지는 디밍 효과를 아주 느린 박자로 설정하여 관람객의 시선에 무리가 없도록 조정한다. 빛과 어둠, 상생의 시간을 표현할 수 있는 사운드를 조명의 변화와 함께 재생하여 전시장의 공간과 시간이 하나의 작품으로 느껴질 수 있도록 통일감을 준다.
존재의 그림자가 주연으로 발언하는 본 전시를 통하여 숨겨진 진실, 진리, 가치를 가시화 하며 이면형태의 작업, 그림자작업, 인간의 내면 등을 파헤치는 이미지와 이야기를 이어가는 징검돌이 될 것이다.
2018.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