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x25x45cm 합성수지, 스테인레스 2022
나는 조각과 그림자와 여백을 통해 내면의 이미지를 가시화하거나, 늘 곁에 있지만 간과하기 쉬운 것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작품을 떠올리고 구체화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다. 내가 아무리 손이 빨라서 아무 생각 없이 떠올리고 후다닥 만들어 내는 작품들이 있다 한들, 그 물리적인 과정에서 물질과 교감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러다 3D를 조금 다룰 수 있게 되면서 순식간에 형태를 잡고 1초 만에도 뒤엎을 수 있으니, 형태의 변형에 대한 가벼운 아이디어만 떠오른다. 흙 작업하던 시기와 전혀 다른 형태들이 떠오르고 소멸한다.
3D그래픽으로 이미지를 만들다 보면 오랜 숙고 과정이나 개념은 없이 형태만 가지고 노는 시각적 유희에 빠지기 쉽다. 이게 정말 내가 원하는 작업방식의 전환이 맞나 싶은 걱정도 들고 그동안 비판적으로 생각했던 것을 이렇게 쉽게 받아들여도 되나 싶기도 하다. 가상의 공간 속에서 순식간에 만들고 부수는 덩어리들. 이미지에 이미지를 더하다 보니 혹시 이전에 떠올렸다가 버린 이미지를 무의식중에 구현하는 걸까 싶은 자조도 뒤섞인다.
결론은 바로 나지 않는다. 그렇게 해 보기로 했으니 그저 하고 있을 뿐이다.
조금씩 더 배워 갈수록 흙을 만지는 느낌과 다른,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 효율적이라 여겼기에, 어렴풋이 떠올렸다가 실현하지 못했던 작업들, 즉 현실에서 흙으로 만들기 어려운 작업을 시도하는 것은 자연스러웠다. 그동안 내가 만들어 온 흙 작업의 사전 용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는 건 당연한 절차였다. 새로운 도구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작업세계로 진입하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