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를 뿌리는 농부의 마음으로. 

황학동의 유래는 조선 후기 논밭에 누런 학이 날아들어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선비를 상징하는 순 백의 학과 달리, 먹이를 구하느라 부리를 땅에 박고 진흙 잔뜩 묻은 모습이 자주 눈에 띄어 붙여진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황학동은 논과 밭이었고 일제강점기와 산업부흥기를 거치면서 상권이 형성한 것인데, 온 몸에 흙이 묻은 모습으로 바지런하고 생활력 강한, 누런 학의 모습이 황학동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벼룩시장과 만물시장 등으로 불리여 누런 학과 같이 부지런한 상인들이 밀집했던 시장 동네에, 어느덧 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면서 토박이 상인들과 빌딩 속 시민들의 거리는 높아진 담벼락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관계없이 지내는 시민과 상인들이 예술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서울의 중심에 있으나 문화의 불모지 같은 황학동에서 돌을 골라내듯 문화적 요소를 발굴하고 밭을 일구듯 아이디어를 모아 씨를 뿌리는 마음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였다. 

흙 밟을 일 없는 도시 한 복판에서 찰흙을 주물러 자기 얼굴을 빚고, 동네의 모습을 선으로 기록한 그림에 자기만의 색을 입히며, 상인들 곁을 지키는 반려동물들을 나무에 새겨 상점의 마스코트로 만들고, 황학동에서만 볼 수 있는 오래된 가전제품으로 백남준 선생님의 비디오 아트를 오마주했으며, 지역에서 수집한 재료들로 동네를 상징할 수 있는 모습을 만들어 밤이 되고 가로등이 켜지면 그림자가 드러나는 작품도 곳곳에 설치하였다.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이야기를 녹여내느라 미숙하고 어색하지만 

우리의 작은 시도를 통해 황학동 누구나 예술을 경험 할 수 있다면 

커다란 대야에 온갖 재료를 쏟아 부은 비빔밥처럼 

넉넉하게 준비한 식사를 다함께 맛나게 먹을 수 있다면

60년 만에 흙을 만진다는 어느 할머니의 고백처럼

이보다 좋을 수 없지 아니한가!


여는 글 

황학동은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지만, 도시가 아닌 것 같은 정취가 짙게 밴 곳이다.
오래된 동네가 늘 그렇듯 뒤죽박죽처럼 보이지만 나름의 질서와 규칙이 정갈한데, 세상은 그런 낡은 풍경을 견디지 못해 송두리째 허물고 높은 빌딩으로 담을 세워 옛것과의 조화를 구분짓곤 한다.
신구의 조화가 갈등요소를 내제한 값비싼 환상일지도 모르지만, 그래서 그리 쉽게 갈아엎는지 모르지만, 우리는 오래된 기억을 머금고 있는 동네의 풍경을 붙잡아 선으로 기록한다. 
곧 사라질지 모르고 그렇게 허물어져 가는 것들을 책 한권에 담아 색을 입히며 마음속에 새기고자 한다.
이러한 시도가, 너무 익숙하여 쉽게 간과하고 지나치는, 조금 사소하고 헛돼 보이는 것들에 잠시 애정 어린 시선을 던질 수 있다면, 사라지고 나면 그리워질 것들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지 않을까? 

모든 것은 언젠가 옛것이 된다.
사물도 풍경도 사람도, 변하지 않을 것 같은 모든 것들이 머지않아 옛것이 된다.
옛것이 되어서도 아이의 작은 손을 잡고 오래된 거리를 산책하며, 아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을 낮의 분주함과 밤의 적막함를 함께 바라볼 수 있기를.



안녕
외국을 배낭여행하다보면 가끔씩 한국어가 눈에 박히는 순간이 있는데, 방콕의 카오산로드에서 말도 안 되는 단어와 문장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똭찹’, ‘밥면추가볶음’과 같은 단어와 문장을 만나 당황스럽고 실소를 터뜨린 적이 있는데, 이는 현지인이 한국어 모양만 보고 따라 만든 것이라 생각된다.
한국의 카오산 로드처럼 느껴지는 황학동 구석 골목길에 안부를 묻는 작품을 만든다.
‘안녕’이란 단어는 우리에게 만남과 헤어짐에 모두 쓰이지만, 다른 언어에선 만날 때 주로 쓰이는 단어로 가볍게 인사 나눌 수 있는 최초의 외국어이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굳어버린 시점을 지나 백신접종으로 역병을 이겨내는 과정에서 모두에게 안부를 묻는다.
“안녕”


U ARE MY
매우 동양적인 느낌으로 학을 그리고 오브제를 용접하여 학을 만든다.
두 마리의 학은 무척 이질적인 모습으로 상관없는 듯 같은 공간에 놓여있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이며, 밤이 되어 가로등이 켜지면 서로 사랑을 나눈다.
7살짜리 아이의 드로잉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작품으로, 황학동에 공존하는 시민과 상인의 교류와 화합을 바라는 마음으로 구상한 작품이다.

황학동의 유래는 조선 후기 논밭에 누런 학이 날아들어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선비를 상징하는 순 백의 학과 달리, 먹이를 구하느라 부리를 땅에 박고 진흙 잔뜩 묻은 모습이 자주 눈에 띄어 붙여진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황학동은 논과 밭이었고 일제강점기와 산업부흥기를 거치면서 상권이 형성한 것인데, 온 몸에 흙이 묻은 모습으로 바지런하고 생활력 강한, 누런 학의 모습이 황학동 본연의 모습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벼룩시장과 만물시장 등으로 불리여 누런 학과 같이 부지런한 상인들이 밀집했던 시장 동네에, 어느덧 고층 빌딩이 속속 들어서면서 토박이 상인들과 빌딩 속 시민들의 거리는 높아진 담벼락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나는 같은 동네에 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관계없이 지내는 시민과 상인들이 예술로 연결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밤에서야 입을 맞추는 한 쌍의 새처럼.


소중한 것들은 늘 곁에 있지만, 쉽게 보이지 않아.
비 오는 날 노란 우비를 입은 아이가 날아오르는 새의 모습을 바라본다.
아이는 비를 무척 좋아해서 굳이 비가 오지 않는 날에도 우비와 장화를 걸치고 나다니길 좋아한다. 
아이는 새처럼 자유롭고 싶지만, 어른이 되고 싶지는 않다.
지금의 현실로부터 벗어나고 싶지만 너무 빨리 커버리고 싶진 않다.
이주호 작가의 자전적 소설 ‘정말 있었던 일이야,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만’을 읽고 떠오르는 이미지를 벽화와 조각으로 만들어 보았다.
그리고 밤이 찾아와 가로등이 켜지면 그 조각의 그림자는 어른의 모습을 비추며 아이를 지긋이 바라본다.

이천시 소녀상 - 평화와 인권의 영원한 소녀 김복동상

https://youtu.be/R55ZhEPSOBY

2020년 개인전을 열면서 동명의 책 '여백의 무게'를 내게 되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85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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