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3, 2017
2017 전시서문 / 그림자 - 不二의 세계로 건너가는 징검돌 - 이병창

시인 이 병 창


안경진의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키워드는 ‘그림자’라고 생각한다. 아기를 업고 있는 할머니의 그림자는 젊고 멋진 여자이다. 춤추는 젊은 여자의 그림자는 남자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실체와 그림자의 상반된 모습은 음양의 상극 관계만큼 그 간격이 크면서 발칙한 재미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림자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 있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 안에는 모든 선과 컬러가 사라져 버리고 윤곽만이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사실은 지구는 다양한 빛을 경험하는 특별한 공간이라는 점이다. 빛은 어둠이 있어 빛이다. 빛 그 자체로서의 빛은 의미가 없다. 어둠은 빛의 자궁이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고 빛이 없다면 어둠 역시 그 진가를 드러낼 수 없다. 그 빛과 어둠 사이에서 나타나는 그림자의 세상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가 지구 공간에서 몸을 입고 있는 목적은 온갖 다채로운 컬러로 나타나는 환영(幻影)의 세상을 경험해 가면서 일곱 빛깔의 통합의식인 투명한 빛(클리어, 화이트) 속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의 가능성이요 축복이다. 모든 컬러나 인간 속에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가 있어 인간은 자신의 그림자를 징검돌 삼아서 그림자 없는 세계로 건너갈 수 있다.

그림자 – 동굴, 알, 트라우마, 성격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했던 현인들은 저마다의 시대와 문화권에서 그림자를 다루었다. 그것이 때로는 신화나 전설 속에 묻혀 있기도 하고 종교적 경전 속에도 담겨 있다. 단군 신화에는 인간이 되기 위해 굴속으로 들어갔던 호랑이와 곰 이야기가 등장한다. 육체를 ‘나’로 아는 의식권은 동물성의 의식이다. 거기에는 본능의 코드만이 작동할 뿐이다. 그러나 굴속이라는 공간에서 곰은 자기 변화의 인내와 시련을 통과하면서 인간으로 거듭나게 되고 마침내 하늘의 자식으로서의 천손의식을 자각하는 존재가 되었다. 인간은 이 땅에서 태어났다 죽는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서 와서 하늘로 돌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단군신화는 전해 주고 있다.

동물이 인간으로 거듭나는 그 사이에는 동굴로 상징되는 그림자가 있다. 그림자가 지배하는 세상에 갇힌 사람들은 자신의 에너지를 균형 있게 사용하지 못하고 어느 특정한 에너지로만 치우쳐 있다. 그 치우친 에너지가 고정화되어 조건반사처럼 나타나는 것이 각자의 성격이다. 성격은 집착이요, 인간 의식의 뿌리에 있는 두려움에 대한 무의식적 반영이다. 집착이 강화되면 강박증세가 나타난다. 내가 피하고 싶고 거부하는 에너지이다. 바로 이런 삶의 무의식적 패턴이 그림자를 실체로 인지하게 하고 삶으로부터 떠오르지 못하게 누르고 있다.

플라톤의 ‘국가’에는 이런 말이 있다.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빛으로 향해 동굴의 폭 가득한 통로가 입구까지 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손발이나 목도 속박되고 있어 움직이지 못하고, 쭉 동굴의 안쪽을 보면서, 되돌아보는 것도 할 수 없다. 입구의 아득한 윗 쪽에 불이 불타고 있고, 사람들을 뒤로부터 비추고 있다.”

그림자 하나만 보아온 사람들은 그림자를 실체로 착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하여 지금 내가 보고 인식하는 세계는 동굴 안의 그림자에 불과 할 수 있고 따라서 참된 세계를 보려면 동굴 밖으로 나가 태양을 보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지구의 현실을 그림자의 세상으로 통찰하고 있다. 사람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고 그 그림자를 떼어내려는 무망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 속는 일이고 스스로를 묶는 어리석음일 뿐이다. 나는 플라톤의 동굴을 생각하면서 천부경의 말미에 등장하는 “본심 본태양 앙명 인중천지일本心 本太陽 昻明 人中天地一”(본체가 마음이며 마음의 본체는 태양이다. 드높이 밝아진 사람 가운데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된다)을 생각한다.

나의 에고에 의해 투사된 그림자를 나로 알면서 살아가다가 문득 그 눈길을 자기 자신에게로 돌이킨 사람은 지혜의 빛을 만나게 되고 결국 빛의 존재가 된다. 그것을 헤르만 헤세는 알 껍질 밖으로 나오는 새의 이야기로 비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자는 육적 본성의 알 껍질과 동굴일 수도 있고 허상의 가상세계에서 헤매는 인간의 애달픈 현실이기도하다. 심리적으로 보면 그림자는 개인에게 트라우마로 나타나기도 하고 집단적으로는 촛불 민심이 타오르기 전에 지역감정과 종북타령에 놀아나던 한국의 현실일 수도 있다.

 

자기 변형과 초월

햇빛은 그림자를 만들어낸다. 그러나 정오의 태양 아래에 서 있을 때는 그림자가 없다. 몸을 입고 있는 인간이 자기 자신을 초월(거듭남)한다고 하는 것은 나라고 하는 에고의 그림자를 벗어나는 데 있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중심에 서는 일이다.

삶은 물질로부터 신성을 향해 나아간다. 하나의 단세포로부터 유기적인 생명체가 되고 인간 의식으로부터 영적 자각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이 땅에서 성장과 성숙의 길을 경험해간다. 인간의 형상, 인간의 몸이 지금 여기에 있기까지 얼마나 먼 여정이 있었던가. 우주가 시작된 이래 인간은 동물의 완성이며 신성의 시작점에 와 있는 존재이다. 인간의 몸과 삶이 존귀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림자를 건너간 세상은 평화의 세상이다. 그 평화는 만들어내고 쟁취하는 평화가 아니라 내 안과 밖에서 발견하는 평화이다. 불안과 미혹이 없는 평화, 동굴 속의 인간을 넘어서는 평화이다. 그 평화를 누리는 이가 하늘을 있는 그대로 담고 있는 가을 강물같이 청정淸淨한 사람이다.

하늘과 나와의 하나 됨이 곧 단일성의 회복이다. 그것을 선인들은 일체가 하나인 세상임을 나타내는 불이(不二)라 했다. 그림자와 실체로 나누어진 이원성 안에서 일원성을 보는 사람은 자신의 그림자를 징검돌 삼아 자기 자신을 건너간 사람이다. 안경진의 작품 속에 나타나는 그림자는 그림자를 벗어나고자 하는 안경진의 꿈이고 소원이면서 동시에 그림자의 세상을 향한 그의 순수한 사랑이다.

 

 

 

아득한 절망

모든 자존심이 무너진

폐허를 지나

나를 만날 때

평화는 찾아온다

그 참혹한 세월을 지나

하늘의 평화를 누리는 나는

얼마나 존귀한가

나는 땅에 내려온 하늘

지구에 보내어진 보석

하늘에서 내려와

하늘을 먹고 마시다가

승천하는 신령한 영

때로는 가슴을 누르던

먹구름 위에서

영생의 눈을 뜨고 있는 나

 

- 남빛 (Royal B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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