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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흙을 만지다 갑자기 울음보가 터졌다.

3살 때부터 기관을 전전하다 이곳 쉼터에 살게 된 아이는 부모를 만나는 일도 거의 없이, 함께 지내는 선생님들과 형들의 돌봄 속에 산다. 그랬던 아이가 흙으로 거울에 비친 자기를 만들다가 엄마를 보았다며 눈물을 쏟았다

부모는 아이의 거울이며 그림자다

아이는 이 공허의 수렁을 어찌 채울까.

올 초부터 쉼터 아이들과 점토로 작품 만들기를 하고 있다.

작년 노숙인들에게 밥을 주는 안나의 집 김하종 신부님을 알게 되었고, 후원을 시작했다.

올해 초 기부 영수증을 받기 위해 통화하다가, 노숙인들과 자소상 만들기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신부님이 당장 만나자고 전화 왔다.

다음 날 만나서 반나절 동안 신부님 동선을 따라다니며 이야기 나눴는데, 노숙인들보다 급한이들이 안나의 집에서 지내는 쉼터의 아이들이라고 했다. 노숙인들은 어른이고 스스로 선택한 삶에 대한 책임이 있으나, 아이들은 아직 그럴 힘이 없다고. 우리가 시급히 챙겨야 할 이들은 집을 뛰쳐나온, 그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아이들이라고 했다.

짧은 회의 끝에 나는 한 달에 두 번 아이들을 만나서 흙으로 무언가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리라 약속했다. 그렇게 몇 차례 쉼터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아이들은 모두 선하고 여리고 사랑 받아야 마땅하며 품어야 할 존재라는 것이다.

오죽하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까. 부모가 있다 한들 그들이 제 역할을 다 하지 않으면 집은 차가운 콘크리트 덩어리일 뿐, 따뜻한 울타리가 되지 못한다.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이 거듭될수록 지금 내가 느끼는 가족에 대한 감정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짙어졌고, 그간 만들었으나 발표하지 않았던 가족에 대한 단상들을 전시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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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수지에 채색, 조명

10여 년 전어느 쌀쌀한 아침.

골목에 숨어 담배를 피우며 무료함을 달래던 나는 허리가 다 굽은 할머니가 지팡이에 의지해 저 멀리서부터 천천히 다가오는 걸 보고 있었다.

우연히 바라본 할머니의 힘든 걸음을 눈으로 쫒으며 어딜 그렇게 열심히 가고 계신가?’ 무심코 생각했다.

느린 걸음으로 한참 만에 다가온 할머니의 뒷모습이 드러났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감춰졌던 할머니의 등 뒤에는 깡마른 손으로 움켜쥔 꽃다발이 있었다.

그제야 바라본 학교 앞 현수막.

졸업을 축하합니다.’

그 날은 여고 졸업식이었다.

할머니가 학교 안으로 느릿느릿 사라지는 모습은

나에게 하나의 감동적인 작품으로 느껴졌고 그 여운은 오래도록 남았다.

의외의 모습에 놀란 나는,

할머니가 되어 여러 이야기를 쏟아내고 싶어졌다.

 

만화 <드래곤 볼>에서 주인공인 손오공과 베지타가 평상시엔 싸우지만, 무지막지하고 강력한 공공의 적이 나타나면 퓨전으로 몸을 합체한다. 
퓨전으로 합치면 그냥 쫌 강해지는 게 아니라 월등하고 막강해져서 웬만한 적들은 모두 무찌르는 가공한 힘을 보여준다.

이번 작품에서 너구리와 고양이가 퓨전하는 건... 

매년 가을마다 노원구가 힘주어 치루는 <노원 달빛 산책>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었다. 
조명에 의한 작품이나 연등처럼 밤에 진가가 드러나는 작품들을 천변에 설치하고 산책하는 시민들이 사진 찍으며 즐길 수 있는 행사로, 수십만 명이 찾는 노원구의 대표적인 축제라고 한다.

몇 달 전 중개동의 작은 도서관에서 아이들을 만나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면서 그간 작품을 만들어 왔는지, 생각이 어떻게 작품으로 표현되었는지 보여줬다. 

수줍어서 마스크도 벗지 않았지만, 호기심 가득했던 아이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몇 차례의 회의를 거쳐 아이들이 내게 작품을 의뢰했다.
당연천에 서식하는 동물인 너구리와 고양이가 퓨전자세로 합체하면, 그 그림자가 한반도의 모습을 드리우는 것.
아마 포트폴리오 중에 두 사람이 끌어안고 외줄에 매달린 모습의 그림자가 한반도 모습으로 비치는 <하나>라는 작품에 영향을 받은 듯 한데, 나처럼 쓸데없이 진지하지 않고 밝고 경쾌하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것 같아 너무 맘에 든다. 

후쿠시마 오염수가 낼모레 방류된다는... 
하루 종일 라디오에서 복장 터지는 소식만 들으며 작업하던 오늘. 

아무리 한미일이 연합해서 북중러과 대립전선을 세우며 공포분위기를 조장한대도, 
내일 북한에서 인공위성 쏴올린다는 소식이 일본을 통해 들려도, 
앞으로 동해를 일본해라 적힌 지도를 보며 해군이 훈련한다 해도, 
우리의 잃어버린 모습을 잊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면, 언젠가 퓨전을 이루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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