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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합성수지에 채색     120x95x15cm     2015



내가 루브르 박물관에 간 것은 30대 후반에 이었다.

책이나 사진으로만 보던 것을 직접 만난다며 들떠있던 나는, 위대한 원작과 직접 교감할 수 있는, 살면서 몇 번 경험 할 수 없는 소중한 시간을 보내면서, 그 모든 작품들을 또다시 카메라에 담겠다고 이틀 동안 뛰어다니며 촬영했고, 결국 렌즈를 통해서만 원작을 바라보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지난 여행을 떠올렸을 때 내 머릿속에 남은 이미지는 그림이 아니라 그림을 감싼 액자뿐이었다. 내가 입체작업을 해서인지, 목가적인 풍경을 담은 그림과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액자가 거슬려서였는 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그림의 이미지는 사라지고, 금빛 찬란한 아르누보양식의 액자들만 떠올랐다.

... 나는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데기만 담아왔구나...’

 

어느 밤, 친구와 단 둘이 밤 새 술을 마시며 속에 있는 얘기들을 털어놓았다.

친구는 그만이 했을 법 한 독특한 경험을 이야기 했는데, 그 이야기는 이미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너무 독특한 경험이기에 친구에게 그 이야기 전에 내게 했는지를 물었을 때, 그는 이 일은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처음 꺼내는 이야기이라며 내게도 비밀 유지를 당부했다.

몇 일 후 불연 듯, 그가 꺼낸 이야기는 내가 전에 읽은 책의 내용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책을 찾아 다시 읽어보니 그의 경험은 책의 화자가 했던 이야기와 일치했다.

친구는 손쉽게 남의 이야기를 자기 것으로 각색하는 재주가 있구나...

그 후 다시는 그와 만나지 않았다.

 

그런 경험들을 버무려 이 작품(그림 없는 액자)에 착수해서 어느 정도 윤곽이 들어나던 시기.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정부와 언론, 검찰과 경찰 등 미디어를 통해 접할 수 있는, 권력에 선 자들은 본질은 감추려는 듯, 복잡하고 화려한 껍데기로 사건을 포장하며, 나의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했다.

그 사건의 본질은 수학여행 가는 아이들을 잔뜩 태운 배가 알 수 없는 이유로 가라앉았고, 해경이나 군인 등 아이들을 구출할 수 있는 이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구하는 척만 했으며, 결국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304명의 사람들이 수장된 것이다.

나도,

다시 만나지 않는 그 친구도,

힘이 있는 그 누군가도.

본질을 외면한 채

헛 껍데기로 살고 있구나.


대학시절 신경림 시인이 쓴 농무를 읽고 크게 공감하여, 오랜 동안 같은 주제의 작품을 다양한 형태로 제작하였으며, 이 작품은 2015년에 만든 버전이다.

시에 등장하는 농부의 고된 삶과 예술가의 애절함이 다르지 않음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울부짖음과 발버둥의 몸짓이 예술로 승화되는 과정을 구체화 하고자, 한발로 선 채 위태로운 춤을 추는 인물의 비장미를 묘사했으며, 한발과 팔을 치켜들었으나 고개를 수그린 춤사위를 통해 양면적이고 격정적인 모습을 표현하였다.

이는 슬픔과 신명, 고통과 환희, 죽음과 생명력 등의 이중적 모습을 하나의 작품에 담아내고자 노력한 것이다.

묵직한 숙명을 역동적 형태와 사실적이고 거침없이 연출하여, 민족의 정서가 조각 작품에 깃들도록 노력하였다.

본래 판매를 위해 만든 작품이 아닌, 나에게 도움주신 분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만든 작품으로, 10개의 에디션을 제작하여 5개는 지인들에게 나눠주었고, 그 중 에디션 1번은 2019년 존경하는 신경림 선생님을 직접 만나 헌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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